12월의 과학사: 76년 만의 예약 배송

1758년. 당시 천문학자들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16년 전 사망한 천문학자 애드먼드 핼리가 예측한 대로 정말 혜성이 나타날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혜성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거의 다 지나가던 12월 25일. 마치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없던 혜성이 ‘핼리혜성’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1687년 그려진 애드먼드 핼리의 초상화(이미지: 위키)


애드먼드 핼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천문학 관련 업적을 많이 쌓은 사람이었다. 20살의 나이에 다니던 스탠포드 대학을 그만두고 그리니치 천문대의 천문학자 존 플램스티드의 조수가 된다. 당시 별자리 위치를 정리하는 연구를 진행하던 두 사람에게 한 가지 과제가 떨어진다.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던 미지의 세계, 남반구의 별자리 지도 제작 업무였다. 당시 별자리 지도는 천문학적인 용도가 아닌 항해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신대륙 개척 및 탐험에 남반구 별자리 지도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리하여 무려 영국 왕 찰스 2세의 투자를 받은 이 연구를 위해 두 사람은 남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떠나게 된다. 약 2년의 항해 생활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 핼리는 남반구의 별을 정리한 책 ‘Catalogus Stellarum Australium’(남반구 항성 목록)을 발간한다. 이러한 연구로 슈퍼스타가 된 핼리는 중퇴자임에도 옥스퍼드의 학위를 받고 22살의 나이에 최연소 왕립협회 회원이 된다.

한때는 핼리의 스승이었던 존 플램스티드의 초상화. 초대 왕실천문관이었으며 핼리가 그의 뒤를 이어 왕실천문관이 된다.(이미지: 위키)


1682년, 이런 젊고 유망한 천문학자 핼리에게 새로운 손님이 하나 찾아온다. 혜성이 나타난 것이다. 8월에 최초 발견된 이 혜성은 유럽 곳곳의 관측자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핼리 역시 당시 혜성을 관측한 기록을 남겼는데 연구를 진행할수록 혜성의 움직임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1600년대 초반 요하네스 케플러는 혜성이 직선적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러 과학자의 연구를 통해 혜성의 움직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정확히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는 확정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핼리의 연구는 1682년 다가온 혜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로 뉴턴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는 이 혜성이 1531년 이래로 최소 3번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특히 1607년 나타났다고 기록된 혜성과 1682년 혜성은 그 궤도를 비롯해 공통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뉴턴의 도움을 받은 핼리는 혜성의 궤도가 단순한 곡선 또는 포물선이 아닌 타원 궤도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뉴턴의 그 유명한 만유인력 법칙을 사용하여 알아냈다. 이후 핼리가 자신의 돈으로 뉴턴의 이론을 발간하게 되는데, 그 책은 프린키피아라고 불리며 물리학의 기본이 된다. ) 이런 연구 과정을 담은 책 “혜성 천문학 총론”은 1705년 발간된다. 이 책에서 핼리는 혜성은 다시 돌아오는 존재이며 1758년에서 1759년 사이에 다시 나타난다고 예측하게 된다.

혜성천문학총론의 모습.(이미지: 스미소니언 온라인 도서관)


핼리는 자신의 예측이 맞았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점이 밝혀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핼리 혜성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기를 알아내게 된 혜성으로 기록된다. 이로 인해 혜성 분류에서 핼리 혜성은 1P/Halley라고 불리게 되는데 주기를 아는 혜성 중 첫 번째라는 뜻을 가진다. ( ‘P’는 주기를 의미하는 단어 Periodic의 첫 알파벳을 딴 것이다. )

1758년 핼리 혜성을 처음 발견한 게오르크 팔리치. (왼쪽)독일의 농부이자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혜성을 발견하고도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는 못했다. 대신 달의 크레이터(오른쪽) 중 그의 이름을 딴 크레이터가 존재한다.(이미지: 위키)


혜성의 주기를 알아낸 것은 단순히 천체의 움직임을 측정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혜성은 불길함,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나 1600년대 유럽에서는 혜성이 발견된 이후 흑사병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인식은 더 확실하게 박혀 있었다. 동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핼리가 예언했던 1758년 혜성의 경우 조선에서 기록된 건 1759년 3월이었다. 당시 영조임금 재위 기간이었는데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고 있던 시기였다. 혜성으로 인해 세자에게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는 상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혜성 관측 3년 뒤 조선 역사의 비극 중 하나로 뽑히는 뒤주 사건으로 나타난다.

핼리혜성 발견을 기록한 우리나라의 성변측후단자.(이미지: 위키)


어떻게 보면 누명을 쓴 혜성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이 핼리의 연구였다. 천체 현상을 비과학적인 영역에서 과학적인 영역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은 혜성을 단순히 태양계에 있는 천체로 끝내지 않고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1986년 핼리혜성이 다시 지구를 찾았을 때 유럽 우주국은 자신들의 최초 심우주 미션, 핼리혜성 탐사를 실행한다. 시속 245000km의 속도를 견디며 핼리 혜성을 탐사한 지오토는 혜성의 구성요소가 원시 태양계의 비밀을 풀 열쇠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혜성이 태양계 초창기 모습을 간직한 채 우주를 여행하는 것이다! )

지오토 탐사선의 모습(이미지: ESA)
지오토 탐사선이 촬영한 핼리 혜성의 모습(이미지: ESA)


이제 혜성은 ‘지상 최대의 우주쇼’ , ‘놓치면 안 될 환상적인 광경’ 등 다양한 멘트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두려움, 공포 대신 신비감, 호기심을 뿌려주는 혜성의 모습은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다. 핼리 혜성의 다음 지구 방문일은 2061년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76년의 시간을 건너 ‘로켓’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송되고 있는 핼리 혜성. 물론 그 외에 배송일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혜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혜성이 우리의 밤하늘에 긴 꼬리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지 기대해보도록 하자.

1986년 촬영한 핼리 혜성의 모습(이미지: NASA)
2003년 ESO에서 촬영한 핼리혜성의 모습(ESO)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관측하기 매우 어려운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때 태양부터 혜성까지 거리는 약 28au를 넘었다. 이는 거의 해왕성 궤도까지의 거리 수준이다.




참고문헌

  1.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301601001
  2.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D%95%BC%EB%A6%AC%ED%98%9C%EC%84%B1-%EC%A1%B0%EC%84%A0%EC%9D%98-%EB%A9%B8%EB%A7%9D%EC%9D%84-%EC%95%94%EC%8B%9C%ED%95%98%EB%8B%A4/
  3.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C%A0%EB%9F%BD%EC%9D%98-%EC%B5%9C%EC%B4%88-%EC%8B%AC%EC%9A%B0%EC%A3%BC-%EB%AF%B8%EC%85%98/
  4. https://earthsky.org/space/halleys-comet-and-edmond-halleys-prediction/
  5. https://www.history.com/news/a-brief-history-of-halleys-comet-sightings
  6. https://www.eso.org/~ohainaut/nice/phot-27-03.html
  7. https://www.britannica.com/topic/Halleys-Comet
  8. https://www.nasa.gov/feature/955-years-ago-halley-s-comet-and-the-battle-of-hastings
  9. Edmond Halley’s Observations of Halley’s Comet – NASA/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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